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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 타협 없는 여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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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문사 작성일18-09-14 22:15 조회7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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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political correctness)는 무엇일까? 직역하면 정치적 올바름으로, 21세기 초, 영미권 지식인 사이에서 의회 내외부에서 벌어지는 정치뿐만 아니라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자제하자는 의미에서 발생한 개념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모든 사안에 대입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PC
주의자의 등장은 진보층의 지지아래 큰 성과를 이루었다. 일일이 다 언급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지경으로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회운동이 그러하듯 요즘 들어 PC주의는 극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다문화 사회에서 다수인종을 상대로 역차별을 시도하거나, 비만인 사람을 존중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표준체형인 사람을 비하하고, 비만이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억지를 쓰는 어이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또한 과도한 계몽주의적 태도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거나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반감만 불러 일으켰다. 한 마디로 “네가 뭔데 날 가르치냐”는 생각이다.

극으로 치닫는 사회운동은 정체성 투쟁을 제외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정체성 투쟁은 사회의 피해자인 소수의 ‘우리’가 오직 선한 사람들이며 타인은 모두 악이거나 악에 동조하는 가해자라는 주장으로 귀결되고 갖은 사회적 폐해를 낳는다(대표적인 예로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쩌둥의 홍위병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과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민간인을 죽이고 약탈했다. 중국의 문화유산에 반달행위를 자행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 사후까지 기아와 전쟁 전염병 등으로 1억 명을 죽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 대한 반발로 서구에서는 PC주의자들을 SJW(Social Justice Warrior)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SJW들은 인터넷상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불특정 다수에게 강요하고 강요에 따르지 않으면 상대를 지정하고 수많은 SJW들을 불러 모아 개인을 모욕하고 조롱하며 집단적 언어폭력을 일삼는다. 물리적 폭력이 없다
는 점을 제외하면 중국의 홍위병이나 1930년대 중후반 독일에서 벌어지던 나치당의 유대인에 대한 테러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불필요한 PC는 문화계에도 작용한다. 헐리우드와 게임계에 불어닥친 정치적 올바름의 바람은 여러 작품을 망쳤다. 고스트 버스터즈, 스타워즈 시리즈, 배틀필드 시리즈 등은 대표
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의 과용으로 소비자들이 외면한 작품이다. 물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면 SJW들에 의해 퇴출당할 수 있는 평론가들은 새로운 시도라며 칭송하고 기존의 팬들을 극우적이며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우매한 민중으로 평가절하 했다.

필자는 저들의 행동이 군사독재시절 반공영화, 반공만화를 제작해 언론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국민에게 투사했던 저질 프로파간다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군의 치부는 감추고 적군의 치부를 극대화 해 전시에 사방으로 뿌려대는 삐라와도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한다. 군사독재 시절이나 공산독재국가의 선전물은 권력자가 만들어 미디어를 통해 배포하지만 SJW들의 프로파간다는 비이성이고 광신적인 믿음을 가진 여러 개인의 연대에서 출발한다는 지점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국내의 여성주의 운동과 PC주의자들 또한 해외 사례와 다르지 않다. 기존에도 국내 각종 예능, 드라마에 나온 장면을 불편해 하는 소수의 사람이 다수인양 소음을 내어 방송국이 사과하거나 수정하게 만드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그들을 ‘프로불편러’라고 불렀다. 국내 여성주의 운동과 PC주의자들
의 행태는 프로불편러의 행태와 결합하여 부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필자는 국내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비하와 멸시, 성희롱과 추행, 일정부문에서 발생하는 불평등, 일상에 만연한 나도 강간당할 수 있고 내 일상이 불특정 다수 중 하나에게 침해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존재한다는 것에 동의하며 부정 할 생각도 이유도 없다. 그러나 메갈과 워마드로 대표되는 급진여성우월주의자들이 자신들은 피해자이고 자신들을 제외한 모두가 잠재적 실질적 가해자라며 정치적 올바름을 무기삼아 행하는 혐오와 인지부조화에 동조할 수 없다.

이들은 모든 사안에 ‘이게 다 기득권을 가진 남성 때문이다’ 라며 대부분의 남성을 “한남충”이라 칭하고 “한남 재기해”라는 표현으로 조롱한다. 또,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여성들을 ‘흉내자X’, ‘명예X지’, ‘쓰까’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이들의 행태와 일본 극우파, 독일에서 난민문제로 득세한 네오나치들의 발언, 미국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지금까지도 행하는 인종차별과 혐오발언 사이의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사회는 너무나도 복잡하다.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가 뒤바뀌는 사회이다. 장애인, 동성애자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고, 세입자와 집주인의 관계가 역전되는 상황도 있을 수 있으며, 사용자와 피고용인의 관계,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관계도 역전 가능한 사회이다. 성급한 일반화
는 대중의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사회운동이나 혁명은 대중의 공감과 행동을 이끌어내야 성공 할 수 있다. 유럽에서 왕권을 약화시킨 부르주아가 일반대중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왕권에 대한 반발심리를 이용했고 공산주의 혁명 또한 농노와 도시노동자들을 프롤레타리아라는 공동체로 묶어 지배계급에 대한 봉기를 유발했다. 과반수 대중의 공감과 행동을 등에 업고 서구는 근대를 맞았고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했다.

국내의 여성주의자들은 이들과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대중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고 스스로 고립되는 길로 가고 있다. 심지어 과반 이상 여성들의 동조를 하기까지 얻어내지 못했다. ‘내가 이만큼 불쌍하고 이만큼 피해를 받았다’는 약자성 투쟁을 중단해야 한다. 사회에 문제가 있음을 모두가 안다. 바꾸고 싶은 사람도 바꾸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는 바꾸고 싶은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바꾸고 싶은 사람 중 하나이다.

‘그’분들은 ‘여태까지 우리는 오빠들이 허락하는 페미니즘을 해 왔고 오빠들은 동조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 차례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흑인 인권운동의 대명사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와 말콤X중 누가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지, 호주제 폐지와 여성의 군 진출 등 국
내 여성인권운동 사례 중 근래와 같은 수준의 혐오발언과 행위가 있었는지 돌아보기를 바란다. 그분들 뿐 아니라 모든 개인들은 자신 또한 피해자라고 느끼고 그분들의 주장에 반감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길 바라며 타인의 피해의식을 부당한 것이라 주장하는 것을 멈추기를 바란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은 이렇게 말했다 ‘300년 전까지만 해도 80%가 넘는 사람들이 농노였다. 사회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모두가 각자의 열등한 부분에 의해 억압받고 있다. 사회는 원래 불평등하고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모두가 그렇다. 여기서 해방되는 길은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회를 뒤엎으려 한다면 혼란만 가중 될 뿐이다’ 그의 선동가적이고 보수적인 화법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고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억압받고 있으며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듦으로서 삶의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다만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을 오롯이 혼자 감내 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나와 비슷한 입장에 처한 사람들과 연대하고,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과 열린 자세로 타협하는 행위가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하며 삶의 고통을 경감시킨다고 생각한다.

메갈과 워마드, SJW라고 불리는 무리들은 이런 일련의 행위를 할 줄 모르는 듯 행동한다. 앞으로는 약자성 투쟁에서 탈피해 폭력과 혐오와 파괴적 행태를 중단하길 바란다. 선민의식을 집어던지고 타인과 연대 타협해 모두가 이득을 보는 대승적 결과를 만들어내 점진적으로 개선되는 사회에 속도감을 더하기를 바란다.

이종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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