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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국은 가해자들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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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문사 작성일20-01-13 14:50 조회3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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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永訣) 할 때 

개천가에 고꾸라졌던지 들에 피 뽑았던지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해다오. 

그래도 부족하거든 

이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보아라 

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


작가 김명순(金明淳, 1896년 1월 20일 ~ 1951 년 6월 22일)의 시 「유언」



김명순은 근대 최초의 여성 작가이자 시인으로 많은 작품을 내고, 번역가로서 보들레르의「악의 꽃」을 당시 조선 최초로 번역하여 소개한 인물이다. 당대의 뛰어난 인물이었던 김명순은 식민지 시대에 항일 정신을 담은 시를 다수 발표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시 유언에서는 조국인 조선을 두고 “이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보아라”, “이 사나운 곳이 사나운곳아 사나운 곳아.”같은 표현이 발견된다. 


김명순은 말년에 조선 땅을 벗어나 일본에서 어렵게 살았다. 김명순은 “사나운 곳” 조선에서 어떤 일을 겪었던 걸까. 그는 19세 때에 일본 유학 중 만난 일본군 소위 이응준으로부터 데이트 강간을 당한다. 그 충격으로 도쿄의 강에 투신하여 자살을 시도했지만, 당시 언론은 사건을 김명순의 짝사랑이 빚어낸 해프닝으로 보도한다. 가해자 이응준은 범행을 부인했고, 어떠한 조사나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응준은 이후 전혀 사회적 비판 없이 성공을 거듭하여 나중에는 대한민국의 초대 육군참모총장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김명순의 삶은 이와 대조적으로 흘러 갔다. 그의 모친이 기생 출신이라는 점과 성폭행 피해 사실은 그를 ‘나쁜 피’, ‘헤픈 여자’로 규정하고 가십거리로 만들었다. 

이에 맞서서 「탄 실이와 주영이」라는 자전적 소설을 통해 성폭 행 피해 사실을 용기있게 고백했지만, 남성 문인들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악의적인 루머 유포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중 김동인이 발표 한 「김연실전」은 2차 가해의 정점으로, 김명순의 아명인 탄실과 유사한 이름의 주인공을 내세워 김명순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것에 쐐기를 박았다. 


김명순의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때로부터 얼마나 달라졌는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현재 한국의 성 문제 사건들은 진상조사와 판결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또한, 피해자는 2차 가해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성폭력 의혹이 있는 前 고위 공무원은 혐의에 대한 판단 대상에 들지도 못했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였다. 성접대 의혹이 있는 엔터테이먼트 사장도 압수 수색 한번 없이 증거 불충 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결국 공소시효도 2019년 9월 종료되었다. 또한, 성매매, 성매매 알선, 횡령, 증거인멸 등의 혐의를 가진 톱스타 연예인도 구속되지 않은 채 수사가 진행되고 현재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듯 성 문제와 관련된 사건들은 특히 소위 사회 엘리트층에는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 어째서일까, 왜 피해자가 또 피해를 받아야만 하는지, 피해자를 둘러싼 수많은 2차 가해는 피해자 가 죽은 이후에도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비통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계속 살아나가야 할 것이다. 누군가가 목소리 내지 않는다면 현실은 절대 바 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산 자들’은 의무를 이어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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